우리가 태어나 자란 집은 원가족이라고 부른다. 부모와 형제자매가 여기에 속한다. 결혼이나 독립으로 새롭게 꾸린 집은 핵가족이라고 한다. 배우자와 자녀가 중심이 된다.
많은 부부가 결혼 후에 맞닥뜨리는 문제 중 하나는, 원가족과 새로 이룬 가족 사이의 거리다. 부모가 자주 개입하면 부부의 의사결정이 흔들리기도 하고, 집이라는 공간이 가장 사적인 안식처여야 하지만 그 편안함이 깨지기도 한다. 부모가 집안일이나 양육에 관여할 때는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요즘 이런 불편함을 자주 느낀다. 장모님이 집에 오실 때 편안하지 않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꾸 묻게 된다. “혹시 내가 문제인 걸까?”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다. 내 불편함이 단지 나의 예민함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알고 싶어서다.
가족치료학자 보웬(Bowen, 1978)은 “자아분화(differentiation of self)”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그는 원가족과 적절히 분리되지 못할 때 부부 관계가 불안정해지고 갈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한국 연구(최정윤·김은정, 2011)에서도 원가족과의 지나친 밀착은 부부 갈등을 높이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수록 결혼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보고했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단순히 나의 약점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신호일 수도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 자주 드러난다. 유교 문화는 부모 공경과 효를 강조한다. 집값과 양육비 같은 경제적 현실도 부모와의 거리를 좁힌다. 여전히 “가족은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해서, 경계를 세우는 것이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송정숙(2014), 김영희(2019) 등의 연구는 이런 문화적 압력 속에서 부부의 독립성이 위협받을 때 갈등이 심화된다고 지적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설득해 본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점, 오히려 건강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신호라는 점 말이다. 부모님의 방문은 사전에 약속하는 것이 좋고, 도움은 감사히 받되 중요한 결정은 부부가 내려야 한다. 부모는 조언자일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부부에게 있어야 한다.
해외 연구(Young & Kleist, 2010)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부부가 원가족과의 경계를 분명히 할수록 친밀감과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말한다.
결국 내가 이 글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건 단순하다. 내가 문제여서 불편한 게 아니라, 내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가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 그게 지금의 내가 바라는 균형이다. 가깝지만 침범하지 않고, 멀지만 소외되지 않는 거리. 그 거리를 찾는 과정이 바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혼란이고, 동시에 필요한 배움일지도 모른다.
원가족–핵가족 경계 셀프 체크리스트
아래 질문에 스스로 “예 / 아니오”로 답해보세요.
1. 감정 확인
장모님이나 시부모님이 집에 올 때, ‘사람’ 자체보다 ‘내 공간이 흔들린다’는 느낌이 더 크다. -> 예
불편할 때 상대를 미워하기보다, 내가 쉴 공간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든다. -> 예
2. 경계 인식
중요한 생활 결정(재정, 집안일, 양육 등)은 부부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예
부모님 의견이 필요할 땐 조언으로만 듣고, 최종 결정은 우리가 내려야 한다고 느낀다. -> 예
3-1. 관계 균형
배우자를 “내 작은 가족의 최우선”으로 두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 예
원가족을 존중하지만, 새로 이룬 가족이 우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예
3-2. 원가족 존중 세부 체크 ( 모호해서 좀 더 세분화해서 체크 )
부모님의 의견을 들을 때, “무시하고 싶다”는 감정보다 “참고는 하고 싶다” 는 마음이 더 크다. -> 예
부모님의 존재 자체를 감사하게 여기거나,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있다.-> 예
다만, 그들의 방식과 내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 예
내가 원가족을 존중한다는 건 항상 그들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 예
“존중”은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예
4. 내적 신호
불편함을 느끼면 “내가 예민해서 그렇다”는 자책이 먼저 든다. -> 예
그러나 동시에 “지금은 경계가 필요하다”는 직감도 있다. -> 예
셀프 체크에 대한 해석.
1. 감정 확인
- 모든 항목이 “예”
- 불편함의 핵심은 ‘사람 자체’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내 공간이 흔들린다’는 느낌이에요.
- 즉, 대인관계 문제라기보다 공간·경계 문제가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누구라도 새 가정을 꾸리면 자연스럽게 겪는 건강한 불편함에 가깝습니다.
2. 경계 인식
- 전부 “예” → 부부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습니다.
- 부모님의 조언은 참고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권은 부부에게 있어야 한다는 확실한 경계 의식이 자리 잡고 있어요.
- 이건 “내가 독립된 가족의 주체”라는 자각을 분명히 갖고 있다는 뜻이에요.
3. 관계 균형
- 배우자를 최우선으로 두고 싶다는 마음이 강합니다.
- 동시에, 원가족을 배제하지 않고 존중하려는 마음도 확인됩니다.
세부 존중 체크
- 부모님의 의견을 무시하고 싶다기보다 참고하려는 마음이 큽니다.
- 부모님의 존재를 감사히 여기고, 삶의 일부로 인정합니다.
- 부모님의 방식과 내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 존중은 곧 “항상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 존중을 인격적 대우로 이해하는 태도도 분명합니다.
➡️ 정리하면:
원가족을 정서적으로는 존중하고, 이성적으로는 경계를 분명히 세우려는 상태입니다.
즉, 원가족을 미워하거나 배제하는 마음은 거의 없고, 오히려 존중하려 하지만, “존중과 경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서 갈등을 겪고 계신 거예요.
4. 내적 신호
- 불편함이 생기면 먼저 “내가 예민하다”라고 자책합니다.
- 동시에 “경계가 필요하다”는 직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 이건 자기비난 패턴과 자기보호 본능이 동시에 작동하는 모습이에요.
- 즉, 과거의 후회 경험(엄마, 친구, 아버지와의 사건들) 때문에 자책이 자동반사처럼 먼저 나오지만, 실제 마음의 뿌리에서는 “지금은 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건강한 신호가 분명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종합 해석
- 원가족을 존중하는 마음도, 새로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도 동시에 확고합니다.
- 불편함의 원인은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계를 세우려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있습니다.
- 지금의 혼란은 “내가 문제인가?”라기보다, **“내가 원가족 존중과 경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중이다”**라는 상태로 보는 게 맞습니다.
✅ 핵심 결론
- 원가족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습니다.
- 문제는 존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존중과 독립성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다룰지에서 오는 불편함이에요.
- 따라서 지금 느끼는 불편함은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경계를 세워야 한다는 신호로 해석하는 게 옳습니다.
끝으로.. 나 자신의 혼란스러움을 줄이기 위해서 아래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나는 원가족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
존중은 곧 따름이 아니라, 서로간의 인격적인 대우와 인정이다.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건 예민해서가 아니라, 내 가정을 지키려는 건강한 신호다.
내 작은 가족(배우자와 나)은 내가 가장 소중히 지켜야 할 삶의 중심이다.
원가족과의 거리는 사랑과 존중을 전제로 한 균형의 문제다.
나는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세워 모두가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건강한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내가 바라는 가족의 경계와 그 가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한 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게 됐다.
참고문헌
- Bowen, M. (1978).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New York: Jason Aronson.
- 최정윤, 김은정. (2011). 부부관계와 원가족 관계가 결혼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한국가족관계학회지, 16(3), 47-70.
- 송정숙. (2014). 한국의 가족주의와 부부갈등 연구. 한국가족학연구, 26(2), 1-29.
- 김영희. (2019). 맞벌이 부부의 시댁·처가 가족 간섭 경험 연구. 한국가족관계학회지, 24(1), 83-107.
- Young, K. S., & Kleist, D. M. (2010). The influence of family-of-origin relationships on couple functioning. The Family Journal, 18(4), 329–337. https://doi.org/10.1177/1066480710376505
- 하상희. (2007). 기혼 남녀의 원가족 경험이 자존감 및 부부갈등에 미치는 영향. 한국가정관리학회지, 25(5), 83-96.
- 조소희. (2008). 원가족 분화와 부부 친밀감의 관계.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20(2), 347-366.